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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우리 김천의 역사와 혁신도시


최도철 기자 / che7844@hanmail.net입력 : 2014년 10월 02일

변호사 김 용 대 (한국자유총연맹김천시지회장)

ⓒ 김천내일신문
 앞으로 1 – 2개월 내에 농소.남면 김천혁신도시 지구내에 한국도로공사가 이전하는 등 혁신도시건설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민들의 역량일 수 있지만, 김천을 위해서 헌신했던 조상들의 음덕(陰德)이 있었으므로, 김천에 25층, 27층 등 고층빌딩이 들어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역사서에 등장하는 김천은 어떠했겠습니까? 역사서에 등장하는 김천은 감문국과 주조마국이 있었습니다. 감문국은 현재 감문면, 개령면, 아포읍 일대를, 주조마국은 현재의 조마면을 중심으로 증산, 지례, 농소에 형성된 소국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라에 의하여 감문국은 231년에 석우로 장군에 의하여, 주조마국은 562년(진흥왕 ) 이사부 장군 (이사부 장군은 지증왕 때 우산국 즉 울릉도를 정벌했음)에 의하여 대가야와 함께 멸망했습니다.


  삼국시대 이전에 신라, 백제 지역에는 삼한 즉 마한, 진한, 변한이 있었는데, 마한은 백제지역, 진한은 사로국(경주)을 중심으로 한 12국(낙동강 동편에 위치), 변한은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12국(낙동강 서편에 위치)이 있었고, 그 중 김천과 관련된 감문국과 주조마국은 변한계 12국 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 김천이 경주보다는 거창 등 경남과 가깝고, 성주(성산가야), 고령(대가야) 등과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가야제국들과 친교하며 친가야 정책을 견지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천지역에 위치한 감문국, 주조마국이 변한계 집단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서에 감문국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인데, 신라 조분이사금( 助賁尼師今, 이사금은 왕의 명칭임) 2년(231년) 7월에 “以伊湌昔于老爲大將討破甘文國伊其地爲郡(신라가 이찬 석우로를 대장으로 삼아 감문국을 토멸하고 그곳을 감문군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라는 왜 감문국을 정벌했을까요? 감문국이 위치한 김천 지역은 영남 내륙의 교통 요지이자 한강 유역으로 연결되는 거점에 해당되어 일찍부터 신라의 주목을 받았을 것입니다. 신라의 감문국 복속은 1차적으로는 친가야·친백제로 기울었던던 상주의 사벌국(沙伐國)과 우리 김천의 감천(甘泉)을 경계로 역시 가야와의 유대를 긴밀히 해 온 감문국·주조마국의 연결 고리를 끊어 변한계 소국들과 가야·백제의 결속을 약화시키려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나아가 신라는 고구려·백제에 대적하며 고대 국가로서의 기틀을 확보하기 위해 금강 유역과 소백산맥 서편으로의 진출을 통해 추풍령을 확보하고, 거창·성주·합천 등지의 가야 세력과 상주의 사벌국 공략을 위한 전초 기지를 확보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신라는 감문국을 복속한 이후부터 8세기 중엽까지 감문군(甘文郡)- 감문주(甘文州)- 개령군(開寧郡) 등으로 개편하면서 김천 지역을 정치, 군사적 거점으로 삼게 됩니다. 그리고 신라는 감문국을 토벌한지 10여 년 후 상주의 사벌국을 복속시켰고, 470년에는 추풍령을 넘어 충청북도 보은까지 진출하여 금강과 한강 유역으로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게 됩니다. 이처럼 가야에 대한 신라의 공략은 김천의 감천(甘泉)이라고 하는 자연적인 장애물과 백제의 견제, 가야 제국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300년 가까이 대치 상황을 거듭했습니다. 결국 562년 고령지역의 대가야가 망하면서 변한계 12국 중 마지막으로 감천 서편 현재 개령면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주조마국도 멸망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인연, 즉 우리 김천이 신라의 영토확장의 거점이 되었다는 점이 오늘날 혁신도시를 유치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 아닌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리적으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땅까지 넘볼수 있는 관문(關文)이었던 것처럼, 김천에 혁신도시 건설작업을 통한 12개의 공공기관을 유치함으로써 경북의 거점도시 육성이라는 국가적인 정책에 부합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김천혁신도시 건설작업을 외람스럽게도 감문국, 즉 신라의 역사를 통해서 언급해보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김천의 혁신도시건설 작업은 반드시 성공하여야 한다는 것을 역사적인 배경, 즉 김천의 지리적인 중요성의 관점에서 설명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혁신도시 건설 작업을 통해서 우리 김천과 경북, 그리고 국가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우리 시민들도 미래의 희망을 느껴보면 어떨까요?


최도철 기자 / che7844@hanmail.net입력 : 2014년 10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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