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천내일신문 | 청년취업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해 구직을 포기한 청년 니트족이 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가운데 한국의 젊은이들의 니트족 비중은 터키(24.9%), 멕시코(18.5%) 다음으로 3위를 기록했다. 니트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일본은 4.6%, 한국은 일본보다 11포인트 더 높은 15.6%로 집계됐다.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하류지향’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하류지향’ 은 하류사회를 지향하는 일본 학생들이 왜 하류사회를 지향하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한마디로 일본의 니트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치다 교수는 하류사회를 지향하는 원인을 학생들이 공부로부터, 노동으로부터 도피를 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사회가 어릴 때부터 소비형 인간만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어릴 때 노동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소비를 통한 인정이나 쾌감을 얻다보니, 사회의 모든 것들을 소비의 개념이나 등가교환으로만 인식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언어를 배우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시기부터 아이들은 소비자가 된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법을 배우고,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했을 때에는 그 에 합당한 대가를 받으며, 물건으로 보상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있다.
가족의 한 일원으로서 그 가정 안에서 서로를 도와가며 노동자로서의 주체가 성립도 되기 전에, 사고파는 것에 익숙한 철저한 소비자로 키워지는 것이다. 내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서로를 채워가는 가족구성원으로써의 배려심과 협동심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철저히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값을 측정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무엇을 줄 건데요? 내가 이번 시험에서 성적을 올리면 무얼 선물해 주실 건가요? 를 말하도록 부모가 가르치고 있는 꼴이다. 이런 아이들은 교실에 앉아 거만한 표정으로 교사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자, 당신은 뭘 팔건데? 마음에 들면 사주지!” 이 말을 교실 용어로 바꾸면, “이것을 배우면 뭐가 좋아요?” 가 되는 것이다.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그러나 교육이란 그 당시의 이익을 바로바로 제공할 수 있는 그 무언가는 아니다. 교육 과정이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는 이 교육의 역설을 아이들은 이해 못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럼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 교육의 역설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교육의 역설을 이해시키려 애쓰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무조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너를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과연 아이를 위한 교육일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를 보면, 쉬지 않고 주문을 외워 된다. 너는 공부만 해라.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나중에 뭐든 할 수 있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을 공경하는 법도, 형제나 친구에게 양보하는 법도,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법도 알아가지 못한 체, 그저 책상머리 앞에서 공부만 파고든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알고 있다. 이렇게 공부만 한다고 해서,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무참히 짓밟고 올라가야하고, 돈이면 뭐든 다 해결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하류지향’의 저자는 니트족의 총체적 원인은 바로 ‘글로벌 자본주의와 국민국가의 이익이 상반되는 사태’라고 정리한다. ‘노력해봐야 소용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의욕을 잃어가고 방안에 갇혀서 스스로 니트족이 된다.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발버둥 쳐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며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성인으로서 이런 아이들이 그저 답답하고 한심하다며 손가락질 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어쩌면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 지금 기성세대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른으로서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흙수저로 계급을 나누고, 헬(지옥)조선 속 노예라 지칭하며 스스로를 포기하는 청년들에게 다시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그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기성세대, 어른들이다. 약한 사람을 짓밟고 서서 양손 가득 기득권을 움쿼지고 있는 그 손을 펴, 청년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 미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바른 교육의 시작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