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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김오진 예비후보자 대덕 관기리(관터)에서 여의도 국회까지
최도철 기자 / che7844@hanmail.net 입력 : 2024년 02월 22일
|  | | | ⓒ 김천내일신문 | | 국민의힘 예비후보 김오진 출마자는 대덕면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 정부를 거쳐 윤석열 대통령의 현 정부의 공신으로 국토교통부 1차관직을 그만 두면서 고향에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출사표를 던졌다. 김예비 후보는 대덕 초등학교, 대덕 중학교, 대건 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양대학교 정치학 석사, 한양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나라당 상근부대변인(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전) 이명박 정부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전) 이명박 정부 대통령비서실 총무1비서관(전) 제20대 대통령선거 국민캠프 정무기획팀장(전) 제20대 대통령선거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상황실 이슈대응팀장(전)을 거쳐 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 관리비서관(전), 윤석열 정부 국토교통부 제1차관(전)을 역임하였다. ■ 김오진 예비후보자에게 정치의 길을 물어보자? ▶ 본인이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인가요?  |  | | | ⓒ 김천내일신문 | 정치란 쉽게 말해 국민과의 대화이자 소통이다. 그 목적은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필요충분하게 배분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정치가 노정하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국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소통 부족으로 인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경우, 국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할 수 있다. 특정 집단의 목소리만 강조하거나 특정 이익을 우선시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펼쳐진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 이번 총선에 출마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김천 대혁신이다. 쇠락해가는 김천을 새로운 변화를 통해 다시 살리려 한다. 지금까지 김천은 사통팔달의 도시답게 도로나 철도 등 교통 중심으로 사업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으로 우리 시민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는 솔직히 물음표다. 인구도 계속 줄고 있다. 인구소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터닝포인트가 필요한 것이다. 김천이 바뀌려면 우선 사람을 바꿔야 한다. 기존 사람으로는 혁신하지 못한다. 새로운 사람이 혁신적인 관점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김천에 변화의 바람을 빠르게 불어넣어야 한다. 두 번째는 윤석열 정부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아시다시피 현재 거대 야당의 입법횡포와 정치공작이 도를 넘고 있는데 우리 여당은 힘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총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던지 윤석열 정부를 끝까지 지켜내야만 한다. 그래야 국민의힘이 정권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를 지켜낼 만한 인물이 총선을 통해 국회로 진출해야만 한다. 저는 정권교체와 대선 승리를 이뤄낸 일등 공신으로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정치 발전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정치는 삼류를 못 벗어나고 있다. 국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치인이 있는, 그러니까 ‘정치인의, 정치인을 위한, 정치인에 의한 정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국회의원은 국민과 지역의 뜻을 국회로 전달하여 수렴하고 이를 입법을 통해 실현시키는 역할이다. 정치인들 뜻대로 하는 정치의 시대는 끝났다. 국민의 뜻을 받아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늘 낮은 자세와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정치이며, 이렇게 해야 정치가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치 양극화로 점점 설득과 타협의 정치가 사라져가고 있다. 정치는 문제 해결의 공간이며 이를 위해서는 운용의 묘를 살리는 정치가 필요하다. 나는 이런 정치를 하고 싶다. 고향인 이곳 김천에도 정치 발전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은 어떻게 지냈어요?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대덕 초등학교와 대덕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문명의 혜택을 받기 힘든 촌구석이었다. TV가 있었던 집이 드물었다. 가난했던 집에 책이 없어 동네를 돌아다니며 어떤 책이든 빌려와 열심히 탐독하던 학구열 넘치는 ‘안경 낀 꼬마 아이’였다. 불에 태워지던 책을 집으로 가져와 그을린 재를 후후 털어내며 읽은 적도 있다. 아시다시피 책이라는 건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던 더 큰 세상을 상상하며 정치에 대한 꿈을 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읽으며 선거에 출마하는 상상도 했었는데, 이렇게 고향 김천에서 출마를 하게 되었다. ▶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지요. 중학교 졸업 후 대구 대건고등학교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더 넓고 큰 세상과 만나봐야 한다”는 당시 중학교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대구에 갔다. 대구의 분위기는 김천과 사뭇 달랐다. 집을 떠나 홀로서기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대구에서 살아왔던 친구들과 섞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다 함께 조용필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셨던 故 이문열 선생님(동명이인)이 잊혀지지 않는다. 없는 형편에 대구에서 홀로 유학하고 있는 저를 챙겨주시고 다독여주셨던 것이 생각난다. 늘 격려와 관심, 채찍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나 한다. 대학에 가서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어쨌든 나의 인생은 새로운 세상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3년을 마치자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 대학 시절에는 무엇을 했지요?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 학사 및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릴 적부터 정치에 대한 꿈을 키워왔던 터라 자연스럽게 전공으로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한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대학 생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했을 때 이미 캠퍼스는 낭만이 사라진 공간이었다. 이 땅에 사는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고나 할까, 당시는 그랬다. 거리에는 최루탄이 자욱했고 학교 수업은 휴강의 연속이었다. 학생회와 또래 동기들과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때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토론했던 경험이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 저의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자 정치철학을 이루는 바탕이 된 것 같다. ▶ 정치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소문이 있는 데요 학부를 마치고 난 후 정치학을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정치는 삼류’라는 냉소와 비판을 받는 한국 정치의 제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싶었다. 나의 결론은 한국 정치가 갖는 문제점의 상당 부분은 그리 완벽하지 않게 설계된 대통령 중심의 권력 구조와 정부 형태, 쉽게 말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것이다. 제도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리더십의 측면이나 정치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트주의 중심의 리더십과 타협과 존중이 사라진 정치문화,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좋은 제도를 수용하더라도 제대로 운용될 것이라 보장할 수 없다. 시대가 달라지고 있는 만큼 리더십이나 정치 문화 부분은 많이 성숙될 수 있다고 본다. ▶ 정치에는 어떻게 입문하게 되었어요? 1997년에 입법보좌관으로 어렵사리 국회 의원실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부만 해서 그런지 여의도 정치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고 인맥도 당시에는 넓은 편이 아니었다. 막상 마주하게 된 현실 정치는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정치학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정치학에서는 정당정치에 대해 다루긴 하지만 얼마나 당원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정당이든 대통령 후보든 당원들의 땀과 눈물 없이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나 역시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30년 안 되는 기간 동안 역사적인 순간을 마주해 왔고 당원동지들과 함께 울고 웃고 했다. 그럴 때마다 정치를 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차가운 머리가 아닌 뜨거운 가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진심이 아니거나 공감하지 못하면 국민이든 당원이든 금방 알게 된다. 뜨겁게 공감하는 정치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다. ▶ 제16대 대선을 가까이서 지켜본 소감은?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별한 선거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 정치에 입문한 지 5년 정도 흘렀을 무렵이었는데, 대통령 선거를 직접 눈 앞에서 목격하는 첫 선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회창 대통령 후보 보좌역으로 일하게 되었다. 이회창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선거 당일까지도 의심하지 않았더랬다. 뼈 아픈 패배였다. 정치는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당시 지지를 잃고 있던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해서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정치가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실제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생활은 어떻게 지냈어요? 총무비서관이라는 자리는 상당히 엄중하면서 책임감이 막중한 자리라고 생각했다. 역대 정부의 총무비서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다들 알 것이다. 흔히 청와대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는 일종의 ‘곳간지기’로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말 많은 것들을 총괄해야 하는 자리이다. 정부의 국정운영에 있어 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처음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는 선임행정관으로 시작했는데, 정부 말기로 접어들 때쯤 총무1비서관 직책을 맡게 되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정치란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하고 성찰했던 시간들이었다. 절제와 성숙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법이나 규정, 원칙, 민주적 절차에 입각한 업무수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 윤석열 정부에서 용산 이전 업무를 전격 담당했지요?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출마 선언하기 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 가치와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부분 공감했다. 출마 선언 후 2021년 7월 국민캠프 정무기획팀장으로, 11월부터는 당 선거대책본부 상황실 이슈대응단장으로 참여하였다. 선거 당일까지 대선 승리를 위해 밤낮으로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고심했다. 대선 승리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후, 윤석열 대통령께서 국민과의 첫 약속인 용산 이전 및 청와대 개방 실무를 맡기셨다. 예전 총무 비서관의 경험도 있었고, 무엇보다 일을 할 줄 안다고 보신 것 같다. 사실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는 과제였다.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기간 내에 마무리 짓기 어려웠다. 관련 부처들과 원활히 소통을 이어 나가고자 했고, 규제와 같은 문제들은 통합적으로 접근하여 신속하게 해결해 나갔다. 끊임없는 토론과 설득으로 대통령 임기 시작인 5월까지 용산 이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용산 이전과 청와대 개방은 국정 공약이었던 만큼 중요한 과제였다. 권위와 신비의 상징이었던 청와대는 일반인들이 산책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었고, 120년 동안 금단의 땅이었던 용산기지는 우리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여유로운 미래의 땅으로 변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통령실 비서관으로서의 업무 경험이나 다양한 분야에서의 정책 수행 능력, 낮은 자▶세의 리더십으로 이제는 김천 발전에 이바지하려 한다. 국토교통부에서는 어떤 일을 했지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고위직 공무원으로서 업무를 처리해 나가면서 약탈적인 이권카르텔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맞서 싸워달라”는 대통령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국토교통부 제1차관에 임했다. 국토교통부의 정책에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을 입히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 LH개혁, 구리토평·오산세교·용인이동 등 5개 지구 신규 택지 발표, 공시지가 현실화 계획 재검토, 청년 주택드림 청약통장 개선 등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차관으로 일하는 동안,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또한, ‘지역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생각으로 기업이 적극 참여하는 국가산단 조성계획 등 지역 경쟁력 강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국토의 신속한 균형발전 방안을 위해 고민했다. 이제는 김천시민들의 주거복지와 환경개선, 지역경제의 쾌속성장을 위해 뛰겠다. ▶얼마 전 공약발표회를 가졌다. 김천을 위한 다른 공약이 있는지요? 얼마 전 기자간담회를 통해 ‘김천 그랜드 비전’을 발표하였다. 제 비전은 김천을 ‘찾아오는 도시, 머물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김천 그랜드 비전’은 ①스마트 교통물류 거점도시 김천, ②미래선도 첨단산업도시 김천, ③미래형 인재양성 교육도시 김천, ④생활낙원 안심환경 행복도시 김천, ⑤맞춤형·통합형 보건의료서비스 건강도시 김천 등 다섯 가지 공약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김천 대혁신을 위한 다섯 가지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 첫째로 경제혁신이다. 기존의 SOC 중심의 저속 발전이 아닌 빠르고 힘 있는 변화와 도농 복합 조화로운 발전을 꾀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문화혁신이다. 김천시 관광 로드맵을 구상하고 장기체류 휴양 등 문화·여가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로 정치혁신이다. 시스템 공천 도입 등 시·도의원 공천을 혁신하고 줄 세우기나 공무원에 대한 갑질에 철퇴를 내리겠다는 것이다. 넷째로 사회혁신이다. 실질적인 저출산·고령화 극복대책을 강구하고 김천 내 다양한 갈등 해결을 위해 ‘새마을 김천’과 같은 공동체 정신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홍수 등 자연재해 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거주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김오진 예비후보자는 무엇보다도 시민의 목소리를 통해 더 좋은 김천을 만들어 나가고 빠른 변화와 힘 있는 발전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며 서울처럼 시민들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자족적 생활권을 형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하고 제비 다리 고치는 흥부의 마음으로 시민의 마음을 살피겠으며 늘 낮은 자세와 겸손한 마음으로 시민을 섬기고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정치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최도철 기자 / che7844@hanmail.net  입력 : 2024년 0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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