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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가볼만한 김천의 새로운 명소 지례 윤은보 서즐 정려각

지례면 교리 마을 입구 새로운 명소로 탄생
예(禮)를 아는(知) 고장, 지례(知禮)의 자랑
윤은보 서즐 정려각, 삼선생유허비 정비사업 완료

최도철 기자 / che7844@hanmail.net입력 : 2026년 01월 13일
ⓒ 김천내일신문
희망찬 2026년 새해가 밝았다. 금년은 십이지(十二支)의 일곱 번째 동물인 병오년(丙午年) 말의 해로서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말을 강한 추진력과 열정, 도전과 변화의 기운을 가진 이로움을 주는 동물로 인식해 왔다. 새해에는 말과 같이 활동적이고 기운이 넘치는 대박 터지는 한 해가 되기를 고대해 보며 새롭게 단장한 역사관광 명소 한곳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곳은 지례면 교리에 소재한 윤은보서즐정려각과 삼선생 유허비 일대이다. 예를 아는 고장, 지례의 이름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유서깊은 역사와 전설이 스며있는 공간이면서도 세월의 흐름 속에 퇴락하고 주변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잊혀져 있던 것을 고장을 사랑하는 뜻있는 지례인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마침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경오년 새해와 겨울방학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새롭게 김천의 명소로 떠오른 지례의 윤은보서즐정려각을 찾아 선현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지례의 명물 돼지고기를 맛보면 어떨까 한다.<편집자주>

세종대왕이 주목한 지례인 윤은보 서즐의 효성
지례는 조선시대말까지 김산군, 개형현과 함께 오늘날 김천시의 뿌리가 된 독립된 고을로서 예를 아는 고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예부터 많은 역사적인 인물을 배출한 고장으로 이름이 났다. 조선은 충효열(忠孝烈)을 인간의 기본 도리로서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고 이를 장려하기위해 모범적인 인물에게 오늘날의 훈장에 해당하는 정려를 하사해 표본으로 삼게 했다.
자식이 없는 스승 장지도를 향한 제자 윤은보와 서즐의 지극한 효성은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에게까지 전해지고 1432년 왕명으로 세워진 지례면 교리 윤은보 서즐 정려각은 우리고장에서 가장 오래되고 역사깊은 정려각으로 자리매김하고 지례의 자긍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며 지례의 자랑이었던 정려각의 존재는 점차 잊혀지고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뜻있는 이들의 안타까움만 쌓여갔던 것이다.
마침내 2023년 김천시향토문화유산으로의 지정을 계기로 정려각과 삼선생 유허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김천시와 김천시의회의 전폭적인 지원과 면민들의 정성으로 번듯한 역사의 광장으로 새롭게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 김천내일신문
향토사학자 문재원씨는 “장지도, 윤은보, 서즐선생은 지례현이 배출한 역사적 인물이며 이분들의 행적과 정려각, 유허비는 지례의 자랑이자 상징인데 이번에 새롭게 단장이 되어 옛 지례의 위상을 되찾은 것 같다” 고 자랑스러워 했다.
장지도, 윤은보, 서즐선생의 행적과 본 사업을 알리기 위해 세운 비문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예(禮)를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고을 知禮面!
"삼선생 정려각 주변정비사업 記實碑"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효(孝)를 백행(百行)의 근본이라 여겼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지키는 일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였다.
여기 지례땅에는 자식없이 돌아가신 스승(張志道)에게도 부모처럼 효(孝)를
실천한 이가 있었으니 윤은보와 서즐이다.
스승이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미담을 전해들은 세종임금은 이들을 어여삐 여겨 1432년(세종14년)에 스승을 어버이와 같이 섬기고 예를 다한 윤은보와 서즐에게 정려문과 벼슬을 내렸으며, 1434년(세종16년)에는 왕명으로 집현전 부제학 설순(偰循)등에게 교훈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편찬하게 했다. 초간본에는 삼강(三綱) 즉,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의 모범으로 삼을만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충신 112명,
효자110명, 열녀94명을 가려 뽑아 그들의 행적을 소개했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16명(효자4명, 충신6명, 열녀6명)을 실었다.
특히 효행을 기록한 효자도에는 "은보감오(殷保感烏)" 즉 "은보가 까마귀를 감동시키다" 라는 제목으로 윤은보와 서즐의 행적이 수록되어 지례현(知禮縣)이 예향(禮鄕)으로서 조선팔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848년(헌종14년)에는 세 분을
기리는 삼선생유허비(三先生遺墟碑)가 세워졌고 비(碑)의 우측에는 명(明)나라
태종(太宗)이 하사한 시(詩)가 새겨져 있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고 산만하여 안타깝던 차에, 2023~2025년 3년간에 걸쳐서 김천시 예산 12억여원을 확보하였다.

이에 지례면민들이 중지를 모아 주변 땅 (5필지 386평)을 매입하여 홍살문을 세우고, 삼강행실도 은보감오(殷保感烏) 편을 비(碑)에 새겨 후세들의 귀감(龜鑑)으로 삼고자 한다.

2025년 음력 10월
지례사람들의 뜻을 모아 세우다.

<정려각 정비사업에 앞장 선 사람들>
삼선생 정려각정비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 김현구 외 9人
향토사학자: 顧堂 문재원

東峴 문홍연 짓고 栗山 이홍재 쓰다

ⓒ 김천내일신문
까마귀도 감동한 윤은보 서즐의 효행
『삼강행실도』 <은보감오>편에 수록
윤은보와 서즐의 스승인 장지도(張志道)는 옥산장씨로 수원부원군 장을포(張乙浦)의 손자로 1371년(고려 공민왕 20년) 지례 거물리에서 태어났다. 문과에 급제한 후 고려조정에서 기거주지의주사(起居注知宜州事), 조선 건국 초에 종4품의 소감(少監)직에 올랐으나 태종 조에 이르러 골육상잔의 참극을 목격한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낙향 후 자신의 심경을 노래한 시가 전한다.
“천년 반곡은 평평한 방안 같고 깎아지른 앞산은 석성을 이루었네. 예부터 몇 집이나 대를 이어 살아 왔던가? 오늘에 이르러 열 집이나 관직을 얻었네. 처마 밑 드리운 감과 밤은 산중의 진미요, 문에 걸린 구름은 세상의 인정을 잊게 하네. 출세하다 버림받음을 원망하지 마라. 편안하고 한가한 손님이 자연과 친구가 되었지 않은가.”
이 시를 통해서 볼 때 장지도는 조선왕조에 종사할 뜻이 없으며 과감히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낙향해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겠다는 불사이군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장지도묘소>
장지도는 향리인 거물리 반곡(바람실)에 서당을 열고 제자들을 길러내어 지례현의 향풍을 쇄신하고 문풍을 진작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특히 제자들 중에서 윤은보(尹殷保)와 서즐(徐騭)의 학문이 출중했는데 두 사람은 아들이 없는 스승 장지도를 위해 어버이의 예로서 봉양을 하여 훗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은보감오(殷保感烏)’라는 제목으로 그 효의 행적이 수록되어 지례의 명성을 드높인다.
ⓒ 김천내일신문
다음은「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실린 장지도와 윤은보, 서즐의 행적이다.
知禮縣人尹殷保, 徐騭, 俱學於同縣知宜州事張祉, 一日相謂曰,“人生於三, 事之如一, 況吾師無子可養乎?” 得異味輒饋 每遇良辰, 必具酒饌, 如事父然. 張沒, 二人請廬墓於其親, 親憐而聽之. 乃玄冠腰絰, 居墓傍. 躬爨供奠, 尹父嘗病, 卽歸奉藥, 依不解帶, 父愈, 令復師廬. 月餘尹感異夢, 亟歸則父果異夢夕病作, 未旬而死. 尹晨夕號哭, 不離喪側, 旣葬, 廬父墳. 一日飄風暴起, 失案上香盒, 數月有烏銜物, 飛來置塋前, 人就視之, 卽所失案上盒也. 至朔望酋奠張墳, 徐終三年, 宣德壬子, 事聞, 殷保 騭, 竝命旌門拜官
번역)지례현의 윤은보와 서즐은 같은 고을 지의주사 벼슬을 한 장지도에게 배웠다. 하루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람으로 태어나 임금과 어버이와 스승은 섬기기를 하나같이 하라 했는데 우리 스승이 아들이 없으니 우리가 봉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문득 맛있는 것이 생기면 스승에게 먼저 드리고 명절이면 술과 반찬을 준비해 어버이와 같이 섬겼다. 장지도가 돌아가시자 두 사람은 아버지에게 여묘살이 할것을 청하니 아버지는 가련하게 여겨 허락했다. 이내 상복을 입고 묘옆에서 살면서 몸소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윤은보의 아버지가 병이드니 곧 돌아가 약을 올렸는데 이때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한달여가 지나서 윤은보가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급히 집에 돌아가 보니 아버지가 병이 들어 열흘이 되지 않아 별세했다. 윤은보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곡을 하면서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장례를 치른 후 아버지 무덤에 여막을 지었다. 하루는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더니 향로가 날라 갔다. 몇 개월 뒤에 까마귀가 무엇을 물고 날아와 무덤 앞에 두었는데 살펴보니 잃어버린 향합이었다. 삭망이 되어 장지도는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서즐도 3년상을 마쳤다. 1432년에 이 일이 세상에 알려져 윤은보와 서즐에게 정려와 벼슬이 내렸다.

정려각의 주인공인 윤은보와 서즐은 조선 건국 초기 지례로 낙향한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의 제자가 되어 아들이 없는 스승을 위해 3년간 시묘살이를 한 행적이 삼강행실도에 등재되면서 널리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1428년 (세종10년) 진주의 김화(金禾)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세종은 삼강(三綱) 즉,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충신, 효자, 열녀를 각각 35명씩 가려 뽑아 모두 105명의 행적을 소개하고 당대의 이름난 화가인 안견(安堅)과 최경(崔涇)으로 하여금 그림으로 그리게 하여 1436년(세종18) 편찬한 교훈서이다.
특히 효행을 기록한 35편중 31편이 중국의 사례이고 4편만이 우리나라의 이야기인데 이 가운데 “은보감오(殷保感烏)” 즉 “은보가 까마귀를 감동시키다”라는 제목으로 서즐과 윤은보의 행적이 수록되니 지례고을이 명실공히 예향(禮鄕)으로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삼강행실도에 따르면 “지례현의 윤은보와 서즐이 장지도에게 배웠는데 임금과 어버이와 스승을 하나같이 섬기기로 결의하고 성심껏 모셨고 그 스승이 세상을 떠나자 함께 시묘살이를 했는데 그 도중에 윤은보가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을 지키다가 회오리바람이 불어 날아갔던 향로를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이적이 일어났는데 스승을 어버이와 같이 섬기고 예를 다한 윤은보와 서즐에게 1432년(세종14)정려문과 벼슬을 내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김천내일신문

세종대왕은 1426년 진주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사건이 발생하자 충효열(忠孝烈) 즉 삼강(三綱)을 바로 잡기위해 설순과 안견으로 하여금 중국과 우리나라의 충신, 효자, 열녀의 사례를 연구해 백성교화서를 발간하게 하니 이것이 곧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이다. 모두 105편의 사례가 실렸는데 이중 우리나라 최고의 효행 사례 4건 중에 윤은보와 서즐의 행적이 실렸던 것이다.
<서즐묘소>
윤은보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시가 기록되어 있다. 孔門廬墓載遺篇 공문(孔門)의 여묘(廬墓)살이 남겨진 글에 실렸으나 師道千年癈不傳 스승의 도(道) 천년토록 병들어 전해지지 않았었네 誰料窮鄕初學輩 궁벽(窮僻)한 시골의 처음 배우는 이가 누가 알리 種楷腰經企前賢 성인(聖人) 가르침 실천하여 법 심으며 앞 현인(賢人)처럼 되길 바랄 줄을 一軆而分性本眞 한 몸에서 나누어졌으나 성품은 본래 진실해 夢驚親癠氣通神 어버이 병환에 꿈에도 놀라니 기운이 신묘(神妙)하게 통했네 慈烏反哺能相感 반포(反哺)하는 까마귀도 능히 감동(感動)되어 香合啣來慰棘人 향합(香合) 물고 와 상주(喪主)를 위로하네 세종대왕은 1432년(세종14년) 두 사람에게 정려와 벼슬을 내렸는데 김천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정려각으로서 지금도 지례면 교리 마을 입구에 자랑스럽게 서있었고 이번에 대대적인 정비사업으로 옛 위용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의 행적으로 인해 ‘예를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고을’이라는 뜻을 가진 지례(知禮)의 명성이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자료제공:김천문화원>

최도철 기자 / che7844@hanmail.net입력 : 2026년 0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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