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주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은 형사사법제도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건은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추가 사실관계와 새로운 혐의가 드러나면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수사 체계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사건은 검찰이 옳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기관도 완벽한 수사를 장담할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수사의 빈틈을 메울 안전장치가 존재하느냐는 점이다.공교롭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검수완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의 연장선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다시 논의하고 있다. 검찰 권한을 분산하려는 개혁의 취지는 타당하다.
권력기관은 견제받아야 하며 국민의 기본권은 더욱 두텁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원칙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기능까지 약화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 역시 국가의 책임이다.그래서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제도를 바꾸는 것이 개혁인가, 아니면 국민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개혁인가.새로운 제도가 기존 제도보다 국민을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충분한 검증이 없다면, 그 개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충분한 검증이란 제도의 취지뿐 아니라 예상되는 부작용과 국민 보호 효과까지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보완수사권 논란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 보완수사권, 이상과 현실
보완수사권 폐지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검찰의 수사 권한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추진되고 있다.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가 사실상 수사권 확대라는 우려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절차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그러나 법률은 조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제도는 실제 사건과 피해자의 삶 위에서 작동한다. 아무리 이상적으로 설계된 제도라도 현실에서 국민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면 다시 점검해야 한다.
범죄 현장은 실험실이 아니다. 경찰 역시 최선을 다하지만 모든 사건을 완벽하게 규명할 수는 없다. 증거가 뒤늦게 발견되거나 새로운 정황이 드러나 수사 방향이 달라지는 일도 적지 않다.이때 검찰이 사건을 다시 경찰에 돌려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절차가 반복되는 동안 사건은 지연될 수 있고, 그 부담은 결국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돌아간다.광주 여고생 살인사건이 던진 질문은 검찰의 권한을 유지할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을 보호하는 장치를 충분한 검토 없이 축소하거나 폐지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 문제는 보완수사권만이 아니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보완수사권 자체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의 기본 제도를 바꾸는 입법이 충분한 검증과 사회적 숙의 없이 추진되는 관행이다.입법은 정치의 영역이지만 그 결과는 국민의 일상에서 집행된다.법은 국회에서 만들어지지만, 그 가치는 국민의 삶 속에서 증명된다.
이러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임대차 3법은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통해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강화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시행 이후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 간 가격 격차, 전세 매물 변화 등 시장에 미친 영향과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고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 반면 사용자 개념의 확대와 손해배상 책임 기준의 변화가 법적 예측 가능성과 노사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둘러싼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방송 3법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 추천 구조와 사장 선임 절차를 개편하려는 법안이다.
그러나 새로운 지배구조가 실제 독립성을 높일 것인지, 영향력의 주체만 달라지는 것은 아닌지를 두고 의견이 맞서고 있다.법안은 서로 달랐지만 질문은 같았다.
우리는 충분히 검증했는가.좋은 취지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개혁의 명분이 입법의 완성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
■ 국민은 개혁의 이유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작동하지만, 다수결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다수결은 결정을 위한 절차이지, 진실을 보장하는 장치는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원하는 것을 곧바로 입법하는 체제가 아니라, 다수가 틀릴 가능성까지 제도적으로 견제하는 체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속도보다 숙의를 요구한다. 다른 의견을 듣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검토하며, 필요하다면 속도를 늦출 줄 알아야 한다.정치권은 의석의 힘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의석의 숫자가 제도의 완성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언론과 시민사회 역시 정치적 승패를 넘어 법안의 내용과 결과를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정치는 선거에서 끝나지만, 법은 국민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다시 광주 여고생 살인사건으로 돌아가 보자.만약 제도의 빈틈 때문에 진실이 끝내 밝혀지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누구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개혁의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은 속도가 아니라 완성도로 평가받아야 한다.
충분한 검증 없이 새로운 제도를 국민에게 먼저 적용하는 순간,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실험이 된다.
실험은 실패하면 다시 고칠 수 있다. 그러나 범죄 피해자의 생명과 무너진 가정, 한 번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국민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다.국민은 개혁이 존재하는 이유다.그러므로 개혁은 국민을 실험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