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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가볼만한 김천의 명소] 인현왕후길과 무흘구곡

연말 송년모임을 역사적 명소 찾아 한 해 마무리 권장
걷기 좋은 길 선정 “인현왕후길” 힐링 명소로 각광
청암사 인현왕후 복위식과 연계한 역사의 무대
수도계곡 절경과 무흘구곡 스토리 텔링 결합 운치 더해

최도철 기자 / che7844@hanmail.net입력 : 2023년 12월 14일
다사다난 했던 2023년 한해도 찬란히 저물어가고 있다.
연말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망년회니 송년회니 하며 음주가무를 즐기던 풍속도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지 오래다.
차분히 금년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는 연말, 이제는 회식, 음주 대신 건강과 친목,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고장의 명소를 찾아보는 새로운 송년문화를 제안해보고 싶다.
ⓒ 김천내일신문
한국관광공사에서 2018년 8월, <걷기 좋은 길>로 선정되기도 한 증산면 인현왕후길은 대표적인 김천의 트레킹 코스로서 천년고찰 청암사, 수도계곡의 절경과 어우러져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인현왕후길을 가기위해서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나 증산면 수도리 마을 뒤 수도암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시작하는 길이 가장 일반적이다. 소나무를 비롯한 아름드리 침엽수림과 다양한 활엽수 군락, 크고 작은 계곡을 넘나들다보면 청암사와 용소폭포 방향으로 나뉘는 삼거리 지점에 있는 정자에 닿을 수 있다. 이곳에서 폭포방향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한다면 9Km정도 거리로 넉넉잡아 2시간 정도면 청암사까지 내려올 수 있다.
아니면 용소폭포 방향으로 돌아 내려오면 수년전 개통한 출렁다리를 거쳐 웅장한 용소폭포를 감상하는 것은 인현왕후길이 선사하는 마지막 선물이다.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수백여년전 서인으로 강등되어 울면서 청암사로 은거해 복위를 꿈꾸던 인현왕후의 파란만장한 짧은 삶을 떠올려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인현왕후(仁顯王后)
비운의 왕비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
조선 제19대 왕인 숙종(肅宗)의 계비(繼妃)로 본관은 여흥민씨이다. 아버지는 노론인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이며 어머니는 은진송씨로 서인의 거두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1680년(숙종6) 인경왕후가 죽고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서인들이 집권한 후 송시열(宋時烈)의 추천으로 1689년 왕비가 되었다. 왕자를 낳지 못해 왕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는데 1688년 숙원장씨(淑媛張氏)가 왕자 윤(昀)훗날의 경종을 낳으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1689년 숙종이 왕자를 원자로 책봉하려하자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노론이 극렬 반대하면서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이어지고 남인이 집권하면서 숙원장씨는 희빈(禧嬪)이 되었다. 인현왕후는 남인들의 주장으로 폐위, 서인으로 강등된 후 3년간 청암사에 은거했다. 1694년 폐비복위운동을 계기로 갑술환국(甲戌換局)이 일어나 다시 남인이 밀려나고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자 장씨는 희빈으로 강등되고 인현왕후가 왕비로 복위되었다. 1701년 35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어 경기도 고양의 명릉(明陵)에 숙종과 함께 묻혔다.

인현왕후 복위식 재현
인현왕후의 청암사 생활 (1689-1694)
장희빈의 모함과 인현왕후를 후원하며 왕권을 위협하는 서인세력의 권력비대화를 막고자하는 숙종의 정치적 이해가 작용한가운데 인현왕후는 1689년 서인으로 강등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남인세력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어머니 은진송씨부인의 외가와 인연이 닿아있는 성주(현 김천시 증산면 청암사 일대는 1914년까지 성주에 속했음) 수도산 청암사로 피신해 4년간 은거했다. 절에서는 방문객들로부터 민씨를 보호하기 위해 법당 맞은편 개울너머에 사대부가 양식의 극락전과 남별당을 신축하는 등 극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또 42수관세음보살을 모신 보광전을 지어 복위기도처로 제공했다. 
인현왕후 복위식 재현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인현왕후는 외가에서 보내준 시녀 한명을 데리고 살면서 기도를 드리거나 수도산 곳곳을 다니며 시문을 짓는 것으로 울분을 달랬다고 한다. 1694년 숙종이 남인세력을 몰아낸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복위된 후 청암사에 보낸 친필 편지에서 “내가 청암사 큰스님의 영험한 기도덕분으로 복권되었다”라며 청암사를 품고있는 수도산을 보호림으로 지정하고 전답을 하사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훗날 극락전을 중창할 때 발견된 시주록(施主錄)에는 궁중상궁 26인의 이름이 올라있어 정치적 격변기에 노회한 궁중여인들이 인현왕후가 훗날 복위할 것에 대비해 청암사에 시주를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이런 인연으로 조선시대 말까지 궁중여인들이 청암사를 출입하며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청암사
1694년 숙종이 남인세력을 몰아낸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복위된 후 청암사에 보낸 친필 편지(현재 진본은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소장. 사본은 청암사 함원전 벽에 걸려있음)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世間有七重
三寶及父母君善知識
三寶爲出離之宗
父母爲養命之宗
君爲保身之宗
善知識爲導迷之宗
自予還本以來我孤閒尊者盡忠竭力道合佛心
朗覺月於塵滿使我迅返正位不沈欲坑
致有今日非師之功耶
非多劫之佛力安能如是耶
今聞我還位懇禱倍前不分晝夜與雲師寂師爲我盡賣衣鉢重刱靈刹新建祝閣
師之爲我用心我之爲師感恩非人所述哉
故爲師等替送釵盞鞋三種之信
恒爲三寶之禮祝閣改額
爲含元殿永爲祝釐之所
隨喜略助爲究竟之正因
所謂直心菩提者也
於是付囑本宮 永垂後嗣云
乙亥五月日
星山佛靈山
(번역문) 세상에는 일곱 가지의 근본이 있으니 불ㆍ법ㆍ승 삼보와 부모와 임금과 선지식이겠지요.
삼보는 무명과 번뇌를 벗어나게 하는 근본이고 부모는 낳아주고 길러준 근본이며 임금은 우리 몸을 보존케 하는 근본이고 선지식은 미혹에 빠진 중생들을 인도하는 근본일 것입니다.
내가 본가에서 나와 청암사로 둘아온 후부터 우리 고한존자(당시 청암사 주지스님)께서 충정과 기력을 다하여 인간의 도리와 불심을 밝혀주어 속세에 물던 나에게 깨달음이 가득 차도록 도와주셨고 욕망의 구렁텅이에 가라앉지 않게 하셨으니 오늘과 같이 빨리 복위하게 해주셨으니 이 모든 것이 스님의 공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라면 어찌 능히 이와 같을 수 있었겠습니까.
내가 환궁하고서 들으니 청암사 스님들이 제가 절에 있을 때 보다 더 간절하게 밤낮없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옷과 발우를 다 팔아서 전각을 새로 지으셨다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저를 위해 마음 쓰심과 제가 스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스님들께 비녀와 찻잔과 신발 세가지를 신표(감사한 마음의 증표)로 보내드립니다.
제가 늘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거처(방)의 현판을 바꾸시어 함원전(含元殿)이라 하고 길이 복을 기원하는 장소로 삼았으면 합니다.
기뻐하며 조금이나마 보태어 마침내 이를 정인(正因/올바른 도리)로 삼고자 하니 이른바 진여(眞如/불변하는 이치)를 바로 헤아리는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합니다.
이에 본궁(本宮/살던 집, 여기서는 청암사를 말함)에 부촉(付屬/인연을 맺음)하여 길이 이 같은 사실을 후손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을해년(1695년.숙종21) 5월

인현왕후의 흔들리는 남자 숙종(肅宗) 1661-1720
숙종은 조선의 제19대 왕으로 부왕인 현종의 뒤를 이어 1674년 13세의 어린나이에 즉위했다. 일찍이 판단이 명석하고 예리하여 성년이 되기 전까지 대비가 수렴청정 하던 관례를 깨고 직접 통치에 나섰다. 숙종의 재위기간은 양란으로 왕실의 권위가 추락하고 당쟁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로 남인과 노론이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숙종은 당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기성정권을 일시에 몰아내고 소외되었던 당파를 정치수반에 등용하는 세 차례의 환국(換局)을 통해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다.
남인의 영수인 허적(許積)을 사사하고 서인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를 계비로 삼은 경신환국, 희빈장씨가 낳은 왕자를 원자로 삼자 반발하는 서인의 영수 송시열을 사사하고 인현왕후를 폐비시킨 기사환국, 인현왕후 폐비한 것을 후회한다는 전교를 내려 남인을 몰아내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킨 갑술환국이 그것이다.
겉으로는 궁중여인들의 암투와 숙종의 변덕으로 보이지만 실은 두 여인이 속해있는 붕당(남인,서인)을 교대로 등용하여 그들의 힘을 약화시켜 왕권을 강화시키려는 고도의 정치술이었던 것이다. 숙종은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재위기간동안 큰 치적을 남겼으나 야사에서는 두 여인의 가슴에 큰 대못을 박은 비정한 남자로 기억되고 있다.
인현왕후의 맞수 장희빈(張禧嬪) 1659-1701
장희빈으로 널리 알려진 희빈 장씨는 조선 19대 왕인 숙종(肅宗)의 2년 연상빈(嬪)으로 제20대 경종의 어머니이다. 인동장씨로 본명은 옥정(玉貞)이며 남인계열인 역관(譯官) 장형(張炯)과 어머니 윤씨부인 사이에서 1659년 태어났다. 대대로 역관에 종사한 중인집안으로 당숙인 역관 장현(張炫)은 당대 최고의 부호로 남인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11세 되던 해에 부친이 사망하고 가세가 기울자 궁녀가 되어 대왕대비전(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 조씨) 침방나인이 되었다. 두 살 연상이고 신분이 미천한 장나인을 숙종이 가까이 하는 것을 알아챈 대왕대비에 의해 출궁되었다가 대왕대비 사후 다시 입궁해 1689년 숙원(淑媛)에 봉해졌다. 1688년 소의(昭儀)로 승차한 해에 숙종의 장남 윤(昀)을 낳았다. 숙종이 1689년 윤을 원자로, 장숙원을 희빈(禧嬪)으로 책봉하자 인현왕후를 지원하는 서인세력이 극렬 반발했고 이에 숙종은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를 폐위하고 장희빈을 중전에 봉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폐비가 다시 중전으로 복위되고 중전장씨는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1701년 인현왕후가 죽은 후 숙빈최씨가 숙종에게 장희빈이 신당을 차려 인현왕후에 대한 저주굿을 했다고 고해 숙종은 장희빈에게 자진을 명했다. 숙종은 자진을 거부하는 장희빈의 입을 벌리게 하고 문짝을 떼어 가슴을 누른 채 세 사발의 사약을 먹여 죽게 했는데 향년 43세였다. 일설에는 이때 저항하던 장희빈이 세자의 남근을 당겨 훗날 경종이 후사를 두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고도 한다. 장희빈은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에서 국모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사극에서 가장 사악한 후궁으로 그려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당시 남인과 서인의 권력다툼과 남편 숙종의 비정한 통치술 속에서 희생된 가련한 여인일 따름이다.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내 대빈묘(大嬪墓)에 홀로 안장되어 있다.

영화와 드라마 통해 본 인현왕후
숙종을 중심으로 인현왕후와 장희빈이 펼치는 사랑과 질투, 음모와 극적반전은 오랫동안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소재가 되어왔다. 궁중 암투와 비극적인 사랑, 드라마틱한 줄거리는 시대와 세대, 성별을 불문하고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1961년 개봉한 <요화 장희빈>에서는 인현왕후에 조미령, 장희빈에 김지미, 숙종에 김진규가 주연을 맡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1968년의 임권택감독의 <장희빈>은 태현실과 남정임, 신성일이 주연을 맡았고 70년대 들어서는 TV드라마로 제작되기 시작해 1971년 MBC <장희빈>에서 김민정, 윤여정, 박근형이, 1981년 MBC <여인열전-장희빈>에서는 이혜숙, 이미숙, 유인촌, 1988년 MBC <조선왕조500년-인현왕후>에서 박순애, 전인화, 강석우가 주연을 맡았다. 또 1995년 SBS <장희빈>에서 박선영, 김혜수, 전광열이, 2010년 MBC <동이>에서는 박하선, 이소연, 지진희, 2013년 SBS의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홍수현, 김태희, 유아인이 인현왕후와 장희빈, 숙종 역을 맡는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거쳐 가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현왕후나 장희빈, 숙종 역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무흘구곡전시관
한강 정구선생의 선비정신이 깃던 “무흘구곡”
대가천, 옥동천, 수도계곡으로 불리며 수도산에서 발원해 풍부한 수량과 기암괴석과 단풍으로 인해 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 김천의 대표적인 자연경관으로 증산면은 1914년 이전까지는 성주땅이었다.
주변에 청암사와 수도암 등 고찰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의 명문장가이자 예학자로 김굉필의 외증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선생이 성주에서 영남 남인학파의 종주로 활동할 당시에 중국 남송 주희의 시(詩) 무이구곡을 본따 수도계곡의 절경지 아홉 곳을 7언절구의 시로 노래했으며 구곡 중 현재 성주군 관할에 1-5곡, 김천시 관할에 6-9곡이 있다.
2010년 한국관광공사 3대문화생태 관광기반조성사업의 전략사업으로 무흘구곡 경관가도조성사업이 선정되어면서 시작되어 총사업 연장 35.7Km 중 김천시 사업구간 10.3Km, 117억원의 사업비로 구곡전시관과 도서관, 체험실, 놀이방을 갖춘 무흘구곡전시관과 오토캠핑장, 야영장, 물놀이장, 출렁다리 등을 설치하여 2018년 전체 사업이 마무리되었다.

정구선생은 수도계곡 절경지를 거닐며 중국 송나라 주희(朱熹)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따 무흘구곡이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무흘구곡(武屹九曲)

일곡 봉비암(一曲 鳳飛巖)
일곡탄두범조선(一曲灘頭泛釣船)
첫째구비 여울에다 낚시배 띄우노라
풍사요요석양천(風絲繞寮夕陽川)
석양 냇가 바람에 흔들리는 낚시줄 뉘 알랴
수지연진인간염(誰知涓盡人間念)
인간세상 온갖 생각 다 버리고
유집단장불만연(唯執檀獎拂晩煙)
박달삿대 짚고서 저녁안개 헤치는 걸

이곡 한강대(二曲 寒岡臺)
이곡가주화작봉(二曲佳姝化作峯)
둘째구비 아름다운 봉우리가 되었다는 곳
춘화추엽정장용(春花秋葉( )粧容)
봄꽃 가을낙엽 단장도 고울시고
당년약사영균식(當年若使靈均識)
이럴 때 이 경관을 영균이 알았더라면
첨각이소설일중(添却離騷說一重)
이소경에 한 구절 덧붙혀 말했으리

삼곡 무학정(三曲 珷鶴亭)
삼곡수장차학선(三曲誰藏此壑船)
셋째구비 누가 배를 이 산골에 감추었나.
야무인부이천년(夜無人負已千年)
밤에도 훔쳐갈 이 없이 천년을 지났네
대천병섭지하한(大川病涉知何恨)
대가천 건너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마는
용제무유지자련(用濟無由只自憐)
건네주지 못하니 홀로 안타깝구나

사곡 입암(四曲 立巖)
사곡운수백천암(士梏雲收百尺巖)
넷째구비 백척바위 바위에 구름 걷히고
암두화초미풍삼(巖頭花草帶風鬖)
바위 위 꽃과 풀은 바람에 나부끼네
개중수회청여허(箇中誰會淸如許)
그 누가 이런 맑음 알겠는가
제월청심영락당(霽月天心影落潭)
중천의 맑은 달은 맑은 못에 잠겨있네

오곡 사인암(五曲 捨印巖)
오곡청담기허심(五曲靑潭幾許深)
다섯구비 맑은 못은 그 깊이가 얼마인가
담변송죽자성림(潭邊松竹自成林)
못가의 솔과 대나무는 저절로 숲을 이루었다.
복건인좌고당상(幞巾人座高堂上)
복건 쓴 사람은 단위에 높이 앉아
강설인심여도심(講說人心與道心)
인심과 더불어 도심을 강론하네

옥류정
육곡 옥류동(六曲 玉流洞)
육곡모자침단만(六曲茅茨枕短灣)
여섯구비 초가집이 물굽이를 베고 누워
세분차격기웅관(世紛遮隔機重關
세상의 근심걱정 몇 겹으로 막았네
고인일거금하처(高人一去今何處)
고고한 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풍월공여만고한(風月空餘萬古閑)
바람과 달만 남아 더없이 한가롭다.

칠곡 만월담(七曲 滿月潭)
칠곡층만요석탄(七曲層巒遼石灘)
일곱구비 산 겹겹 돌 여울을 둘렀는데
풍광우시미증간(風光又是未曾看)
이런 절경은 예전에 본적이 없네
산령호사경면학(山靈好事驚眠鶴)
산신령의 장난에 학이 놀라 깨어나니
솔로무단낙면한(松露無端落面寒)
솔잎에 맺힌 이슬 얼굴에 떨어져 차갑구나

팔곡 와룡암(八曲 臥龍巖)
팔곡피금안익개(八曲披襟眼益開)
여덟구비 마음을 여니 눈앞이 활짝 열리고
천류여거부여회(川流如去復如廻)
흐르는 냇물은 다시 돌아 나오고
연운화조혼성취(煙雲花鳥渾成趣)
구름꽃과 새에 홀연히 빠져
불관유인래불래(不管遊人來不來)
오는 이 있고 없고 관여할 바 아니라네

구곡 용추(九曲 龍湫)
구곡회두갱위연(九曲回頭更喟然)
아홉구비 고개 돌려 지난 일을 생각하니
아심비위호산천(我心非爲好山川)
내 마음 산천이 좋아 이러함이 아니로다.
원두자유난언묘(源頭自有難言妙)
오묘한 진리를 어이 말로 다하리오
사차하수문별천(捨此何須問別天)
이곳을 버려두고 어디 가서 물어야 하나

용추폭포
무흘구곡의 종착지이자 최고의 절경지로 손꼽히는 용추폭포는 높이가 17미터로 선녀탕으로 불리는 물구덩이 깊이가 3미터로 옛날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실제로 폭포 바위절벽에 흰색으로 용의 형상과 비슷한 문양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또 옛날 수도암에서 종을 훔쳐 도망가던 도둑이 발을 헛디뎌 종이 폭포로 떨어졌는데 이후부터 비오는 날마다 종소리가 울린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수도암으로 향하던 인현왕후길은 무흘구곡 중에서도 최고의 절경지를 자랑하는 용추폭포로도 한갈래가 이어지는데 용추폭포 입구에 인현왕후가 복위후 청암사에 내렸다는 편지 내용을 재현해놓아 이목을 끈다.
최도철 기자 / che7844@hanmail.net입력 : 2023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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