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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 전설

전설의 고장, 삼산이수의 고장 김천
수려한 산과 계곡따라 흥미로운 전설이 주렁주렁

최도철 기자 / che7844@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09일
다사다난했던 무술년(戊戌年)이 가고 새로운 희망의 염원을 담은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았다. 십이지(十二支) 가운데서 열두 번째 동물인 돼지, 그것도 황금돼지의 해에는 예부터 재물이 따르고 큰 복이 온다고 일컬어져왔기에 새해에 갖는 기대가 더욱 각별할 것이다.
우리조상들은 예부터 팍팍한 현실의 삶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해학과 풍류를 잃지 않았고 새해와 미래에 다가올 희망의 이야기를 전설이라는 이야기로 만들어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백두대간과 감천이 빚어낸 수려한 산하, 삼산이수의 고장 김천에 골골이 스며있는 우리고장의 전설을 돌아보며 새해를 시작해보자 <편집자주>

1.사모바위 전설
할미바위와 함께 김천을 대표하는 전설이 사모바위전설이다. 사모바위는 김천시 양천동 하로마을 입구에 있는 사모(紗帽.옛날 관리들이 쓰는 모자)형상의 바위로 원래 모암산 서쪽 절벽에 있었다.
김천이 조선시대 초까지 이약동, 최선문, 이호성, 조위 등 큰 인물을 연이어 배출하며 문화적 번성기를 구가하며 영남제일문향으로까지 불렸는데 연산조에 들어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겪으며 지역출신 선비들이 큰 참화를 겪기에 이르렀다.
이후 김천은 중앙정계로의 진출이 막히고 침체기에 들었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사모바위전설이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시대 김천역 앞산에 사모형상의 바위가 있는데 그 형상이 관리가 사용하는 사모를 닮라 그 기를 받아 김천에 과거급제자가 많다는 속설이 내려왔다. 고관대작들이 수시로 고향을 방문하게되자 수발을 책임진 김천역의 역리들이 고초를 당했는데 어느날 한 역리의 꿈에 사모바위를 깨트리면 과거급제자가 끊길 것이라는 한 도인의 예언을 듣고 바위를 깨트리게 된다.
이후부터 과거급제자가 배출되지않자 화순최씨와 벽진이씨 집성촌인 하로마을 주민들이 이를 수레에 싣고가 마을앞에 모셔두고 옛 영화가 다시 찿아오기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화를 겪으며 중앙으로부터 배척당한 지역민들의 울분을 달래고 새로운 희망을 향한 염원이 사모바위전설로 형상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김천내일신문

2.방초정과 최씨담 전설
방초정은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입구에 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46호로 지정된 정자로 1625년 연안이씨로 부호군을 지낸 이정복이 건립한 정자이다.
현존하는 지역정 자중 가장 오래된 정자이며 중앙에 온돌방을 배치해 사계절 모두 사용이 가능한 실용적인 정자형식으로 알려진다. 또 앞에는 최씨담이라는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하는데 방초정 건립에 얽힌 부부간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정복은 임진왜란 발발 전해인 1591년 화순최씨부인과 혼인을 했는데 신행일에 마을입구에서 왜병을 만나게 된다. 왜병이 최씨부인을 욕 보이려하자 마을앞 웅덩이에 몸을 던져 자결을 하였고 몸종 석이도 함께 투신을 하였다.
이정복은 부인이 투신한 웅덩이 옆에 자신의 호를 딴 방초정(芳草亭)이란 이름의 정자를 짓고 웅덩이를 단장해 연못을 만들고 최씨담(崔氏潭)이라 했다고 한다.
남녀간의 애정표현이 금기시되던 조선시대에 안타깝게 먼저 간 어린 아내를 기리며 영원토록 부부로서 함께 있고자하는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담겨있다.
ⓒ 김천내일신문

3.감문국과 빗내농악
감문국은 삼한시대 김천지방에 있었던 변한계 소국으로 서기 231년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에 의해 멸망했다. 1700여년이 흐른 지금도 김천시 개령면과 감문면 일대에는 감문국과 관련된 전설과 지명이 다수 남아 있는데 빗내농악,사달산 원룡장군샘,애인고개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빗내농악은 김천을 대표하는 전국유일의 군사농악으로 그 원류가 감문국의 나라제사와 군사훈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감문국의 도읍이 있었던 개령면 동부리와 양천리 앞으로는 감천이라는 큰 하천이 흐르는데 당시 감문국의 백성들에게는 가장 큰 자연의 숭배대상인 동시에 개령들의 풍년을 담보하는 보물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매년 감천에 대한 큰 제사를 지냈는데 감천이 감문국으로부터 빗겨서 흐른다하여 빗내라 불렀고 제례의 이름 또한 빗신굿이라했다. 이러한 빗신굿과 주변의 또다른 소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기위한 군사들을 양성하면서 군대조련을 하는 여러 가지의 동작들이 하나의 정형화된 농악으로 형성, 발전되어 온것이 빗내농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4.직지사 감나무와 연산군 왕비 신씨 이야기
직지사에는 조선 세조때부터 감을 나라에 바치는 반시진상법이 내려왔다. 이것은 학조대사가 주지로 있을때 직지사 감맛을 본 세조임금이 매년 바치도록 권하여 시작되었는데 연산군때 학조대사가 상소를 올려 궁궐에서 관리를 보내어 직접 따서 가져갈 것을 요구하면서 왕실과 대립하게 되었다. 연산군이 대노하여 학조대사에게 큰벌을 내리라고 하였으나 왕비 신씨가 극구 말리며 한 장의 편지로서 학조스님의 의중을 돌려 파국을 면했다고 전해진다.
신씨는 궁에서 관리가 내려가면 필시 감나무의 해거리를 감안하지 않고 매년 똑같은 양을 채워가려할 것이고 이를 경우 오히려 사찰에 폐가 될 것이라 설득한 것으로 알려진다.
ⓒ 김천내일신문

5.직지사 금강문에 얽힌 여인의 한(恨)
직지사 금강문에는 남편을 만나지 못하고 죽은 여인의 한이 서린 금강문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합천에 제일가는 부자에게 무남독녀가 있었다. 오래도록 시집을 가지 않더니 어느날 떠돌이 승려에게 반하여 상사병이 걸리고 말았다. 부자가 스님에게 사정하여 억지혼사를 치르고 처가살이를 하던중 아들을 낳았다. 늘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던 아내는 처자식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 것으로 믿고 감추어 두었던 가사와 장삼을 보여주었는데 또다시 불심이 발동한 남편은 야반도주하여 직지사로 들어가 버렸다. 아들을 업고 남편을 만나기 위해 여러날을 달려온 아내는 지쳐 직지사 금강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는데 여인의 기일마다 스님이 한명씩 죽자 여인의 원한을 달래기 위해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한 고승의 권유에 따라 여인이 죽은 자리에 절을 수호한다는 금강역사를 모신 금강문을 여인이 죽은 자리에 지은 후부터 이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김천내일신문

6.까마귀가 감동한 윤은보의 효행
지례현 출신인 장지도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서당을 개설해 제자들을 길렀다. 윤은보와 서즐이 아들이 없는 스승을 위해 부모의 예로서 봉양하다 스승이 죽자 시묘살이를 하기에 이르렀다. 윤은보는 스승의 시묘살이중 아버지가 병이 들자 여막과 집을 오가며 아버지를 간병했고 아버지가 별세하자 두 묘소를 오가며 함께 곡을 했다. 어느날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향로가 날아가 버렸는데 가난한 윤은보는 새 향로를 살 돈이 없어 슬피 울고 있었더니 까마귀가 날아간 향로를 물어와 두고 갔다는 전설이다. 스승에 대한 윤은보와 서즐의 효행은 삼강행실도 은보감오(殷報感烏)편에 실리고 정려와 벼슬이 내렸다.
ⓒ 김천내일신문

7.청암사 비로자나불의 전설
신라말인 서기859년 쌍계사의 산내 암자로 창건된 수도암은 최치원이 화엄 10찰로 꼽을 만치 큰 사찰로 처음에는 보광사라 했다. 주불인 대적광전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우리나라 비로자나불중 가장 큰 규모의 불상 중 하나인데 거창에서 조성한 후 수도암으로 이전을 하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었다. 어느날 한 노승이 찾아와 불상을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수도암이 있는 수도산 중턱까지 왔는데 그만 칡에 발이 걸려 넘어져 불상을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화가난 스님이 수도산 산신령을 불러 감히 부처님을 모시는데 칡 따위가 방해해서 되겠냐며 앞으로 수도산에 칡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한 후부터 수도산에는 칡이 자라지 않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 김천내일신문

8.감문산 계림사와 아포 함골마을
개령면 동부리 감문산은 예부터 풍수지리로 볼 때 호랑이의 형국이라 했다. 감문산에 속한 두 봉우리 중 호두산은 호랑이의 머리에 해당하고 취적봉은 몸뚱이라 했는데 호랑이의 머리가 맞은 편 아포읍 대신리 한골마을을 향해있어 살상기운이 미쳐 마을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이같은 사정을 전해들은 아도화상이 호랑의 살상기운을 제압하기 위해 화랑이의 심장자리에 절을 짓고 호랑이와 상극인 닭이 많이 산다는 의미를 담아 닭계(鷄)자에 수풀림(林) 계림사(雞林寺)라 이름했다는 전설이다.

9.내입석 정승바위 전설
내입석은 봉산면 예지리로 속한 마을로 조선시대 충청도 황간현과 경상도 김산군의 경계가 되었던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큰 바위가 튀어나와 있는데 정승바위라 불린다. 조선 성종과 연산군때 판서와 정승을 지낸 한 사람이 이 마을에 살았는데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면서 부인은 이 마을에 떨어져 살게 했다. 남편과 함께 살고 싶은 부인은 시주를 온 스님에게 남편과 살수있는 방도를 물었고 스님은 소금 한 섬을 집앞 연못에 뿌리고 마을 입구의 바위를 깨트리면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부인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학이 연못에서 날아올랐는데 그로부터 몇일 후 남편이 죽어 상여에 실려 마을에 들어왔다고 한다. 사람들은 정승바위를 깨트렸기 때문에 남편이 죽은 것 이라고들 했다.

10.용강산 미륵바위 전설
어모면 군자리 하덕마을과 은림리 상군마을,덕마리 상군마을의 중간에는 용강산이 솟아있다. 산 정상에는 미륵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예부터 상군마을에서 이 바위가 보이면 마을의 처녀가 미치고 상덕에서 보이면 불이 나고 하덕에서 보이면 마을에 경사가 있다고 하여 상군과 상덕에서는 주민들이 흙을 쌓고 나무를 베지 않아 보이지 않게 하고 하덕에서는 나무를 베고 흙을 파내어 잘 보이도록 했다고 전설이 전한다.
ⓒ 김천내일신문

11.사두혈 명당과 개구리봉
직지사 뒷산인 태봉은 예부터 사두혈의 명당으로 이름이 났는데 풍수지리로 볼 때 뱀이 머리를 들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조선 2대 정종 임금의 태를 이 산 봉우리에 안치했는데 일제시대에 이 산에 딸린 개구리봉으로 불리는 봉우리를 매입한 한 부자가 개구리봉에 조상의 묘소를 들이려고 지관을 보냈더니 명당임에는 분명하나 주산인 태봉의 뱀의 기운이 드세어 멸문지화를 당할 자리라고 반대했다.
방지책을 물었더니 두 가지를 제시했는데 한 가지는 산을 잘라 개구리봉으로 들어오는 뱀의 기운을 막고 그래도 미진할 경우 개구리의 피난처로서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가 필요하다하여 산을 파내어 기를 끊고 산 옆에 저수지를 판 후에 묘를 들였다고 전해진다.

12.봉계 분통골 전설
봉산면 봉계의 서산정씨 입향조인 정윤홍의 묘터에는 분통골 전설이 전한다.
정윤홍에게는 사인(斯仁), 사의(斯義), 사예(斯禮), 사지(斯智), 사신(斯信) 등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임종에 이르러 유언하기를 “내 시신을 넣은 관(棺)은 반드시 10개의 빈 관을 앞에 묻은 뒤에 마지막에 묻도록 해라”였다.
명당으로 이름이 난 분통골에 묘터를 잡은 후 부친의 유언을 따라 빈관을 차례로 묻어나가던 중 인부들이 “관 한 개쯤 덜 묻으면 어떠랴”하고 9개만 묻고 시신이 든 관을 10번째 묻고 봉분을 만들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다섯 아들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며 출세가도를 달리자 주위에서 분통골 명당에 부친의 묘를 들여 후손이 발복한 것이라고들 했고 서산정씨 문중은 명문가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이를 시기한 한 권력가가 서산정씨문중에서 역모에 가담한 정황이 있다고 고변하여 결국 그 화가 부친의 묘소에까지 미쳐 부관참시(剖棺斬屍)의 명이 내려졌다. 나라에서 군사를 보내어 파묘(破墓)를 하는데 9개의 관을 열었으나 하나같이 시신이 없는 빈 관만 나오니 허묘라고 판단하고 철수하기로 했다. 순간 한 군사가 이왕 9개를 열었으니 한 개만 더 열어 10개를 채우고 가자고 하는 바람에 마지막 관을 열었더니 관속에서 하얀 학이 나와 남쪽으로 날라 갔다는 것이다.
이후 후손들이 부친의 유언대로 11개의 관을 다 묻었더라면 명당이 온전히 보존되어 문중이 더욱 번성했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고 분통이 터진다 하여 이 골짜기를 분통골이라 했다는 것이다.
최도철 기자 / che7844@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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